Titanic (1997): 1912년 타이타닉호 참사

작성자 :   |   작성일 : Apr 29, 2000  |   카테고리 : 서양사   |   댓글 0

1912년 4월의 어느 날, 타이타닉호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승선해 있었다. 요리를 하는 사람,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 칵테일을 만드는 사람 등 모두 우리들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 모두는 타이타닉호가 멈추거나 침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아니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고 해도 눈을 질끈 감고 외면해 버렸다. 실제로 타이타닉호는 출항 전부터 빙산을 주의하라는 경고를 6회나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타이타닉호의 통신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이 경고를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귀찮으니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고 화까지 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통신사가 받은 경고 메시지는 타이타닉호의 선장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그래서 빙산에 부딪힐 당시에도 타이타닉호는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고, 이 때문에 더욱 큰 대형 참사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 참사가 더욱 끔찍해졌던 이유 중의 하나는 안전에 대한 불감증이었다. 사고 당시 타이타닉호에는 응급 시 사용할 수 있는 구명보트가 턱없이 부족했다고 한다. 타이타닉호의 항로인 북대서양은 북극과 그린란드의 빙하의 끝자락에서 떨어져 나온 빙산이 매우 흔하게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안전조치를 마련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빙산과의 충돌 가능성이 고려되었다면 이런 허술한 안전조치가 취해졌을 리 없었다. 타이타닉호 사고에서는 1,514명의 사람들이 사망하였다. 2,223명을 태운 타이타닉호에 응급시 사용할 수 있는 구명보트가 20(정원 1,178)밖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물질적 번영이 장밋빛 환상을 만들어내었던 20세기 초에, 최고급 초호화 여객선의 침몰은 서구사회에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당시 건조된 타이타닉호는 인간의 기술력과 문명의 결정체로 인식되고 있었기에 그 충격은 대단히 컸다. 타이타닉호는 물질적 풍요와 미래에 대한 낙관의 상징체로서, 이러한 낙관으로 인해 미래를 부정하는 어떠한 경고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모두가 미래를 낙관하는 집단적 분위기 속에서 비관적 목소리가 먹히기나 하겠는가? 집단의 논리가 너무나 강해 한 방향으로만 흐르게 될 경우에는, 때때로 집단적 공멸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Tita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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