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Reine Margot (1994): 1572년 성 바똘로뮤 축제일 학살

작성자 :   |   작성일 : Apr 5, 2000  |   카테고리 : 서양사   |   댓글 0

여왕 마고를 통해 16세기 프랑스 종교전쟁이 어느 정도로 잔혹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음.

16세기 초부터 전파된 루터와 칼뱅의 개신교 사상은 유럽전역으로  빠르게 전파되었음.  16세기 중반부터  프랑스는 카톨릭 교도들과  개신교 교도(프랑스 개신교도들을 ‘위그노(Huguenot)’라 부름)들 사이의 첨예한 대립이 있었음.  이러한 종교적 대립을 종식시키고자 당시 앙리 2세의 부인이었던 카트린느 드 메디치 (가톨릭)는 딸인 마고를 나바라의 앙리와 결혼시킴 (스페인 바스크지역에 자리잡은 나바라에는 대부분 개신교 신자들이었음). 이 결혼은 마고나 앙리나 모두 원치않는 결혼이었고, 정치적 목적이 있었던  정략결혼이었음.

이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수많은 축하객이 몰렸음. 여기에는 수많은 카톨릭 교도들과 개신교도들이 섞여 있었음. 결혼 6일 뒤 , 개신교 지도자인 ‘꼴리니 (위그노의 군사 정치적 리더)’라는 사람이 ‘앙리드 기즈’를 살해함.  이를 계기로 카톨릭 교도들이 개신교도들에 대한 무차별 공격에 들어감. 결혼식 축하모임은 6,000명 (출처에 따라 5,000에서 30,000명으로 서로 다름)의 개신교 교도들이 학살되는 도살장으로 변함.

역사적 배경은 다음과 같음

1572년  8월 18일  마고는 나바라의 왕 앙리와 결혼함으로써 여왕이 됨(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에서 결혼)

1572년 8월 23일-24일 성 바똘로뮤 축제일 학살. 앙리는 마고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살아나고, 이후 몇년간 프랑스에서 거주하지만 1576년에 도주.

1589년 남편 앙리가 프랑스의 왕(앙리 4세)이 됨. 마고가 프랑스의 여왕이 됨

1598년 앙리 4세의 낭트칙령 (위그노의 종교에 대한 권리 인정)발표

1610년 앙리 4세가 카톨릭 신자의 칼에 찔려 암살당함

1685년 루이14세에 의해 낭트 칙령이 폐지 (수많은 위그노(20만-30만)들이 해외로 이주)

1787년 루이16세의 관용칙령에 의해 개신교가 다시 신앙의 자유를 인정 받음

 

 

 

Margot

 

 

Bartholomew그림: Painting by François Dubois, a Huguenot painter born circa 1529 in Amiens, who settled in Switzerland. Although Dubois did not witness the massacre, he depicts Admiral Coligny‘s body hanging out of a window at the rear to the right. To the left rear, Catherine de’ Medici is shown emerging from the Château du Louvre to inspect a heap of bo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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