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곳의 행복

작성자 :   |   작성일 : May 16, 2012  |   카테고리 : 행복에 관한 단상   |   댓글 0

최근까지도 등산을 즐겨하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숨이 턱까지 차고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이 천근만근이 되는 고통을 참아가며 오르는 산행이 어찌 즐거우랴. 개인적으로 이러한 고통이 즐거움으로 바뀌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산행을 즐기는 비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냥 천천히 오르며 흙의 감촉, 나무의 생기, 나무 가지에 스치는 바람소리, 그리고 맑은 공기를 그대로 느끼면 되는 것이었다. 자연의 일부인 내가 다른 자연에 감동하고 고마워하며 걷는 동안 어느새 정상은 가깝게 와있다.

인생 또한 산행과 마찬가지인 듯하다. 인생에서 절실하게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까지의 과정은 길고도 지난한 노력을 요할 때가 많다. 특히 성공의 잣대가 획일화되어 있어 그 성공을 얻기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한 한국사회에서는 ‘훌륭한 결실은 인고(忍苦) 끝에 올 수 있음’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설(說)인 듯하다. 시중의 책이나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들도 하나같이 어려움과 괴로움을 참고 견디는 인내와 자기 채찍의 강도가 강할수록 성공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이를 악물어야 하는 삶에서 어떠한 즐거움을 바랄 수 있을까.

간절한 바람을 성취하기 위해 매사에 이를 악물며 참고 견디는 나날은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토록 바라던 바를 성취한 후의 느끼는 권태는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목표를 성취한 시점에서 또 다른 큰 목표를 설정하고, 다시 한 번 이를 악물며 견디고 참는 나날을 보내는 고행의 쳇바퀴를 굴리고 있다. 행복하고자 하는 많은 이들의 일상이 즐겁지 못한 아이러니가 이러한 방식으로 지속되는 것이다.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야 과정의 소중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내가 바라던 그 행복은 잡기 힘든 아주 먼 곳에 있지도 않았다. 이제는 사소한 일상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내게 긍정적 힘을 주는 사람들은 항상 같은 모습으로 내 주변을 지키고 있었고, 내가 발 딛고 설 수 있게 하는 물적 토대도 가까운 곳에 있어왔다. 이 사실을 느끼고 있는 ‘지금’은 아련한 ‘과거’나 불확실한 ‘미래’보다 훨씬 소중한 가치가 있을 게다.

팍팍하고 힘겨울 수 있는 ‘지금’일지라도 한번 지나간 지금은 ‘과거’란 이름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떠나간 ‘과거’가 회한으로 점철되어 있지 않게 하려면, ‘지금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미래를 기약하는 답변을 하지 않도록 오늘의 매시간들을 음미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생의 과정 내내 참고 인내하며 마음으로 그리는 무엇인가는 내가 그렇게 동경해 왔던 실상이 아닐 수 있다. 내게 행복을 주는 그 무엇인가의 의미가 더 증폭되려면 그걸 얻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의 일상사 또한 즐겁고 가치 있어야 할 것이다.

중대신문 (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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