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Samurai(2003): 1868년 일본의 메이지 유신

작성자 :   |   작성일 : Apr 20, 2000  |   카테고리 : 서양사   |   댓글 0

일본이 서구문물을 무차별적으로 도입한 메이지 유신 시기에,  보수적 무사(사무라이)들이  사라져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서양사람들의 눈에 비쳐진 일본, 그리고 서양사람들의 그런 눈길을 바라는 일본인들의 몽상이 그대로 녹아들어가 있다고 보면 된다.

한국인이 보기에는 너무나 사무라이들이 미화된 어쭙잖은 영화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서 배울 역사적 줄거리는 있다. 영화 속에 나타난 것처럼 사무라이들이 총을 쓰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영화는 영화일 뿐. 당시 사무라이들도 총을 가지고 자기네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정부군에 대항하기도 했다.

다만 영화에서 유심히 볼 내용은….

일본에서 총과 대포가 칼을 빠르게 대체하던 시기에 설 곳을 점차 잃어갔던 무사들의 불만에 초점을 맞추면 될 것이다.

시대적 배경은 일본사에서 가장 격변기 중 하나인 19세기 말. 1853년 미국의 동인도 함대 사령관 페리제독이 쿠로후네(흑선-검은 배)를 끌고 개국요구를 한게 일본 개항의 시작이다. 이후 일본은 미국과 1854년에 미일화친조약을 맺고 1858년에 미일수호통상조약을 맺게된다. 1858년에 맺은 조약은 일본에게 너무나도 불평등한 조약. 1867년 무진전쟁을 거치면서 에도막부는 몰락한다. 이후 텐노(천황)를 중심으로한  메이지 시대가 열린다. 1868년 일본은 연호를 메이지로 고친다.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사무라이의 수장 카츠모토는 세이난전쟁(1877)을 일으킨 사이고 다카모리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이 자는 메이지 유신의 핵심적 인물로서 토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리고 1873년 조선 정벌을 주장하는 정한론을 내세웠다. 하지만 반대파들의 반발로 그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정부군의 사령관직을 그만두고 가고시마(참고: 일본의 열도의 가장 밑인 큐슈 남단에 위치)의 고향으로 낙향한다. 그후 사이고는 가고시마에서 무사들을 단련하는 군사학교(사학교당)를 연다. 1877년에는 이 군사학교의 학생수가 20,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토쿄의 일본 정부에게는 세력이 커져만 가는 가고시마가 눈에 든 가시같은  존재가 된다.

세이난전쟁이 일어났던 1877년 전후에는 무사들이 불만이 극에 달했었다. 이 때는 무사들에게 주던 녹읍이 폐지되고, 칼을 차는 것을 금지하는 폐도령이 공포되었던 때이기도 하다. 또한 전쟁에 필요한 인력을 소집하기 위한 징병제로 인해 무사들이 정부군으로부터 자꾸 밀려났던 시기이기도 하다. 무사들은 점차 가난해졌고, 심한 배신감에 시달렸다.  1877년 사이고의 군사학교 학생들이 거병하여 구마모토성(참고: 구마모토는 가고시마 바로 윗쪽에 있음)에서 메이지 정부에 대항하는 내전을 일을킨다. 이 때 사이고는 패하고 할복으로 생을 마감한다. 세이난전쟁은 일본에서 일어난 마지막 내전으로서, 정부는 이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중앙집권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게 되었다.

 

라스트 사무라이

댓글을 남겨주세요.

Current day month ye@r *

마강래 교수 연구실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