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의 눈물(2013): 1926년 조선총독부 청사

작성자 :   |   작성일 : Apr 30, 2000  |   카테고리 : 서양사   |   댓글 0

1910년의 경술국치 이후 겪은 경복궁의 수난에 관한 이야기.

경복궁은 태조 4년에 만들어진 조선의 법궁(=왕이 거처하는 궁궐)이다. 임진왜란 때의 화재로 경북궁이 크게 훼손 되었지만, 1865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재건이 시작된다. 경복궁의 재건에는 천문학적 경비가 소요되었다. 재건을 위해 무차별하게 발행한 당백전으로 인해 서민들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당시 화폐가치가 20% 하락했다고 함)

경복궁의 건청궁은 1895년 을미사변의 슬픔을 간직한 곳이다. 이 건청궁에서 40대 중반이었던 명성황후(1851-1895)가 일본 자객에 의해 살해되었다(명성황후는 흥선대원군(고종 아버지)의 간섭을 없애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1882년 임오군란 후 일본 견제를 위해 청나라에 의존했다가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후 러시아에 의존하였다). 다음 해인 1896년 고종이 현재의 정동에 위치한 아관(러시아의 공관-러시아 제국은 한자로 아라사(俄羅斯)로 불렸음)으로 파천되면서, 경복궁에 거센 수난이 시작된다.

일본은 1914년 ‘조선물산공진회’를 경복궁에서 개최하면서, 궁내 주요 전각 몇 개를 제외하고 대부분 훼철한다. 훼철된 전각은 기생집으로도, 식당으로도, 일본계 종교단체로도 팔려갔다.  조선의 정통성을 철처하게 무시하기 위해, 일본은 1916년부터 조선총독부 청사를 경복궁 내에 짓기 시작하는데, 경복궁 내 팔려간 전각들은 총독부 청사 건립의 비용을 대는데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총독부 건물은 경복궁에서 가장 상징적 건물인 근정전 바로 앞에다 지어졌다.  5년으로 계획했던 총독부 청사의 건설은 두 배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어 1926년에 완공되었다. 이후, 조선의 존엄을 대표했던 근정전은 ‘르네상스양식에 바로크 약식을 짬뽕한’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 건물에 완전히 가려지게 된다.

해방 후 조선총독부 청사는 Capital Hall(중앙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미군정청 청사로 사용된다. 1948년 5월 헌법제정을 위한 제한 국회, 같은 해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가 중앙청에서 열린 이후, 이 건물은 정부청사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경복궁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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